“독서는 다양한 간접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값진 도구다.”와 같은 당연한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두꺼운 책을 품속에 품고다니며, 혹은 시도 때도 없이 어느 대학 교수의 논문을 발췌해 읊으며 “정보의 나열”에 지나지 않는 뇌속 데이터 축적을 뽐내는 누군가의 지적 허영도, 나에겐 “3개 묶음 14,900원"과 같은 판촉 안내문을 볼 때의 기계적 느낌에 지나지 않는다.
두꺼운 책을 품속에 품고다니며, 혹은 시도 때도 없이 어느 대학 교수의 논문을 발췌해 읊으며 “정보의 나열”에 지나지 않는 뇌속 데이터 축적을 뽐내는 누군가의 지적 허영도, 나에겐 “3개 묶음 14,900원"과 같은 판촉 안내문을 볼 때의 기계적 느낌에 지나지 않는다.
좋은 책은,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나에게’ 좋은 책은, “스케치북에는 양옥집을 고동색으로 그려야 한다. 문은 네모나게 그려야 한다.”와 같은 고정관념을 깨준다.
독서는 초가집이나 유리집을 떠올려볼 수 있게 해준다. 물고기 모양의 집에도 사람이 살 수 있겠다고 믿게 한다. 집을 파란색 크레파스로 그려도 된다고 허락해준다. 그림 그리기(세상 살이)란 크레파스 3개로만 그려야 한다는 통념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심지어 더 많은 색의 크레파스가 있다는 엄청난 가설을 참으로 믿게 한다. “리빙 코랄"이나 “아쿠아 스카이"라는 색의 크레파스가 있다는 것도, 그 두개를 섞을 수도 있다는 것도 깨닫게 한다. 사실은 그 색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려 준다. 3개가 아니라 10개도 넘는 크레파스를 내 손에 쥐어주고 지긋이 기다려준다.
독서는 초가집이나 유리집을 떠올려볼 수 있게 해준다. 물고기 모양의 집에도 사람이 살 수 있겠다고 믿게 한다. 집을 파란색 크레파스로 그려도 된다고 허락해준다. 그림 그리기(세상 살이)란 크레파스 3개로만 그려야 한다는 통념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심지어 더 많은 색의 크레파스가 있다는 엄청난 가설을 참으로 믿게 한다. “리빙 코랄"이나 “아쿠아 스카이"라는 색의 크레파스가 있다는 것도, 그 두개를 섞을 수도 있다는 것도 깨닫게 한다. 사실은 그 색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려 준다. 3개가 아니라 10개도 넘는 크레파스를 내 손에 쥐어주고 지긋이 기다려준다.
고동색의 세상과 작품들 속에서(사실이든 내 안경 색이든) 청록색, 귤색, 다홍색 등등의 크레파스로 무엇을 그리든, 네모 뿐만아니라 동그라미 ,세모, 별, 꽈배기 모양으로 어떻게 표현하든 여전히 나로서 온전히 존재할 수 있고, 좋은 작품으로 인정받아 더욱 빛나기까지 할 수 있다는 “증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확신”으로 날 이끌어준다.
마치, 어머니가 날 사랑한다고 자주 말하지 않아도 언젠가부터 그것을 진리처럼 믿게된 것과 비슷한 것 같다.
마치, 어머니가 날 사랑한다고 자주 말하지 않아도 언젠가부터 그것을 진리처럼 믿게된 것과 비슷한 것 같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것을 굳이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궁극적인 깨달음을 준다는 것이다.
독서는 나에게 날개도 주고 물갈퀴도 주고 호랑이 주먹도 준다.
즉, 책은 나를 자유롭게 하며 땅과 하늘을 점점 넓혀 준다.
즉, 책은 나를 자유롭게 하며 땅과 하늘을 점점 넓혀 준다.
아직은 깊고 넓게 많이 읽지는 못하지만, 이것이 내가 “어찌됐건 계속 읽는” 이유다.
독서 토론이 매우 좋았던 날. 뇌가 말랑말랑해진 상태에서 쓴 오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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